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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1826년 병술보의 자료가 없는 관계로 싣지 못하였습니다. 소장하고 계신 분은 대종회 족보편찬위원회로 연락바랍니다.

 

서 문
인씨의 구보(舊譜)는 병계(屛溪) 선생이 서문을 지었는데 이제 중수(重修)코져 하매그 종인(宗人)이 와서 나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한 말씀을 얻어서 머리말을 삼고저 원하나이다”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나같이 글을 못하는 처지에 어찌 서문을 짓겠는냐. 또 이미 병계 선생의 글이 있는데 내가 어찌 덧붙여 쓰겠느냐”고 하니 인씨가 말하기를 “이것은 옛 족보의 서문으로서 이번 족보의 서문이 아닌 것이다. 전에 우리 선조에서 고심하여 이 족보를 간행한 지가 지금 이미 六십여년인데 지금 하지 않으면 조상이로되 어느 사람의 조상이 되는지 알지 못하고, 자손이로되 누구의 자손이 되는지 알지 못하게 되어 현재의 것만 잃게 되지 않고 반드시 다시 옛것까지 잃게 된다면 선조님의 고심을 다시 뵈일 면목이 없으리니 이는 우리 일가의 두려운 바로서 이에 중수(重修)케 되는 것이니 어찌 서문이 없을 수 있느냐”고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옳도다. 모든 인씨의 마음이여! 혹 선조의 마음을 실추시킴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이 계술(繼述) 사업을 함에 있어 마땅히 서문을 지어 후세 사람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병계 선생의 글에 그 말씀이 심히 자상하고 그 훈계가 심히 간절하여 가히 천만세(千萬世)의 일가에 화목하고, 일가를 거두는데 귀감이 되므로 지금 다시 족보를 함에 있어서도 또한 이번 족보의 서문이 될 것이니 어찌 족보의 신구(新舊)로서 끝자리에나마 덧붙혀 쓸 자격이 있느냐”하고 두세 번 사양하다가 이에 그 중수(重修) 의의(意義)를 적고 거듭하여 감히 쓸 수 없음을 말하고, 이 글을 써서 중간(重刊)의 서문으로 주게 됨을 밝히는 바이다.

병술 1826년 2월 청명날 가선대부행성균관대사성동지경연사(嘉善大夫行成均館大司成同知經筵事) 화산(花山) 금우순 序

 

 

편찬위원
도 유 사 현국(덕산), 두칠(면천)
수단유사 세환(덕산), 원상(덕산), 이명(면천), 재곤(면천)
교정유사 영수(덕산), 재현(면천)
감인유사 수(함창), 정오(순창)